상황의 실존적 변주

[A0012] 현대인, 늘 무기력한 군상 - 이주헌(1996)

October 21st, 2007 Posted in Prior Article

20세기 한국의 인물화, 도서출판-재원, 이주헌(미술평론가), 1996

이렇게 얘기해 보자. 70년대 말에 대학문을 나와 새내기 화가로 나선 작가가 있었다. 그가 세상에 내뱉어진 때는 군사정권의 엄혹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했고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번 사람, 권력에 줄을 대 출세한 사람, 기회주의, 한탕주의에 힘입어 정상에 우뚝 선 사람들이 이제 막 가쁜 숨을 돌리고 희희낙락 따뜻한 볕을 쬐는데 열중할 무렵이었다. 화단은 모더니즘미술은 매일 ‘새 미술 운동가’를 부르며 ‘한국적 현대미술의 토착화’란 개발독자적 조형 이념을 우리 화단에 정착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새내기 작가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미니멀리즘이니 모노크롬 미술이니 개념미술이니 하는 모더니즘 미술을 하지 않고는 일 바닥에서 그림 그려 입신하기가 여간 수월치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지만, 도대체 그걸 그림이라고 그린다는 게 보통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이성에 대해 철저한 신뢰를 갖고 정연한 논리 위에서 난해한 조형의 ‘도상작전’을 펼치는 것이 아무리 시대적 요청이라고 해도 예술이 이렇게까지 이성과 논리에 종속돼야 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한국적 모더니즘 미술에는 노장 사상 등 신비주의적 동양철학이 두리 뭉실하게 섞여서 도대체 뭐가 뭔지 종잡을 수 없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했다. 그렇다고 여인과 꽃과 과일 따위만을 그리자니 구태의연하다 못해 군내가 날 정도여서 이는 애시당초 안중에도 둘 수 없었다.이런 현실에서 그의 그림이 표현성이 강해지고 실존주의적인 냄새를 풍기게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을 만족시킬 수 없는 그림이라면 우선 자신의 감정과 욕구나마 한껏 분출해 보는 게 그나마 ‘남는 장사’일 것이기 때문이다. 난세에는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진리를 찾는 것이 외롭지만 가장 확실한 길일 수 있지 않겠는가? 오원배(1953~)가 과연 이런 과정을 밟아 예의 탈을 쓴 인간군상을 그리게 됐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초기 그림은 보는 이에게 이런 정황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연상기제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이런 사정 이외에도 그가 애시당초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나름대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세상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문학적 접근 의지가 강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을 지도 모른다.그의 초기 연작 ‘탈 인간’에서는 전통에 대한 애착, 자폐적인 시대 심리, 불안과 욕구불만, 블랙 유머 등이 엿보인다.

탈 쓴 얼굴을 클로즈업시키고 어두운 색조로 화면을 구성해 가는 방식이 다소 상투적으로 보이지만, 작가의 세상에 대한 불만감은 매우 효과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탈 그림 외에 그는 머리가 떨어진 불상, 선사시대의 고인돌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이 시기에 제작했다.파리 유학을 다녀온 80년대 중반 그는 음울한 ‘탈 인간’에서 밀가루반죽을 뒤집어 쓴 듯한 ‘허물 인간’으로 나아간다. 이 인간들은 익명의 존재들로 바로 현대라는 ‘문명의 야만’이 만들어낸 인간 군상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스스로에게도 익명이 되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다시금 이 지구상에서 펼쳐가고 있는 것이다.
오원배의 관심이 특정 시대보다는 보편적인 문명의 문제로 나아갔음을 인식하게 하는 그림들이다. 88년 작 <무제>를 보자. 여기서 인간들은 어떤 힘에 의해 충격을 받고 한데 뒤섞여 구르는 듯 움직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서로 엉켜 싸우는 듯한 모습이 눈에 뛴다.

그들 주위에는 기둥, 파이프, 사다리 등의 구조물이 함께 헝크러져 있다. 건설을 상징하는 이런 물건들과 화면 전반에 흐르는 싸움, 혹은 파괴의 에너지가 두 가지 중요한 그러나 서로 대치되는 인간본능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90년대에 들어 이 ‘허물인간’에서 그는 푸른 수정조각처럼 보이는 ‘크리스탈 인간’으로 또 한번의 새로운 변화를 꾀했다. 이 인간은 다시 시대의 흐름을 민감히 의식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초기 작품의 ‘탈 인간’처럼 그렇게 모든 면에서 비극적이고 자폐적이지는 않다. ‘시대’에서 ‘문명’으로 나갔던 지난 경험이 역으로 반영된 이 작품들에서는 시대의 흐름이 문명의 파노라마 위에 견고히 서 있다. 물론 그가 본 이 시대 우리 사회상과 사람살이는 상당히 주관적인 해석을 거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민중미술이 철저히 ‘객관’을 추구한 것에 비하면 그의 그림의 주관성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이 주관성은 작가로서의 연륜이 빚어준 상당히 깊은 경험칙에 의존한 것인 만큼 보는 이에게 상당한 공감을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주관성은 물론 초기 습작 시절부터 계속돼온 그의 실존주의에 뿌리박고 있다. 70년대 말 이후 10.26, 5.18, 6.29등의 숫자가 잇따라 지나가면서 우리 사회에 ‘사회과학주의’의 부채가 펼쳐졌다가 움츠러드는 동안 그가 추구해온 실존적 세계 자체는 형식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크게 바뀌지 않았다. 상당히 오래 ‘위기 증후군’을 앓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인데, 이 ‘중세’는 그가 지금까지도 그렇게 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대결 의식을 느끼고 있는 이상 아마 계속 따라붙을 것인지도 모른다.

창고나 지하실, 어두운 회랑 같은 공간에서 들어주는 이 없는 피리와 나팔을 부는 사람, 애써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과 진시황의 토용들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사람, 묵묵히 서 있는 사람 등은 영혼만 남은 듯 그 반투명의 푸른색에 싸여 반듯한 육체를 입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창고 극장’처럼 보이는 공간은 ‘세상은 연극무대, 인생은 배우’식의 평범한 정신성이 그의 그림에 보태주는 깊이와 여유를 맛보게 한다. 물론 그것은 구원의 빛은 아니지만 자칫 그의 그림이 상황논리에 꽉 매여 감동을 잃고 단순한 메시지로 전락하지 않도록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질문을 한다고 해도 답을 들을 수 없는 세상, 설사 답을 듣는다고 해도 거기서 과연 자비를 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세상, 이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 눈앞을 스쳐 가는 숱한 시대의 현상들에 대해 우리는 지나치게 흥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답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이 시대의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고 나선다고 우리 자신이 글 모든 인과의 고리를 끊을 자비 그 자체는 될 수 없기 때문에.바로 그 벽을 향해 세 명의 ‘크리스탈 인간’들은 악기를 연주한다. 그 누구를 위하거나 향한 것이 아닌, 바로 자신들을 그 연주의 청중으로 삼아 영원히 울려 퍼질 영혼의 세레나데를 연주하고 있다.

문명으로 쌓아올려진 신전의 기둥들은 여전히 묵직하게 버티고 서 있지만 그 닳고 갈라진 표면에서 우리는 시대에 치여 사라져간 수많은 인간들의 얼굴과 그들의 핏자국을 본다. 문명 바깥으로 트인 듯 막힌 듯 펼쳐지는 검푸른 공간은 우리가 싸워나가야 할 영원한 무용담의 세계이다. 이것은 업보인가? 분명한 것은, 오원배가 시대의 기세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의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오랜 세월 투쟁한 끝에 얻어낸 세계가 이것이란 것이다.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진실하려 해왔던 그에게 이 세계는 분명 하나의 진실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깨달음 같은 것이다. 이제 그는 그렇게 좌절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이 그림의 나팔 부는 사람처럼 그렇게 진중히. 그리고 유장하게 자기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