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의 실존적 변주

Review

오원배의 그림 –무엇이 달라졌나–  (2007)

정영목 (서울대 교수, 미술사)

I.
이중섭 미술상 수상이후 오원배 교수가 또다시 개인전을 갖는다. 오원배의 작품에 필자가 관심을 갖게 된지도 어언 이십여 년이 넘었다. 그의 작품에 홀린 나의 관심은 다음의 세 가지 이유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첫째, 그와 내가 동년배로 비슷한 성장배경을 가졌다는 것. 둘째, 미국에서 표현주의 미술을 좋아해 그것을 이론으로 전공한 나의 경향과, 표현주의 미술을 유독 싫어하는 프랑스에서 베이컨(Francis Bacon)이 무색할 정도로 표현적이었던, 오원배의 경향이 그래서인지 同類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셋째, 형상성을 근간으로 한 표현주의적 경향의 회화가 상대적으로 메마를 수밖에 없는 이 땅의 미술풍토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견지(堅持)하는 작가의 지성적 태도가 좋기 때문에, — 이런 이유들 말고도 몇 가지 더 있지만 작품과 상관없으니 쓰지 않겠다.

II.
과거의 작품처럼 이번에도 오원배의 그림이 지향하는 기본골격은 같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골격”이라 함은 그림을 구성하는 器材로서의 구조를 뜻한다. 형상성의 인물을 전면에 배치하고, 그 인물의 ‘아우라’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입체적인 기재들을 배경처럼 깔고, 그러나 오히려 배경이 주제 노릇을 하고 인물이 배경처럼 보이는, 그런 관계항의 구조로 그림이 이루어지는 기본 패턴은 같다. 그런데, “심층적인 상징구조”를 위한 기재들의 조형적 활용이 과거의 작품과 비교하여 변형되었는데, 그 양상은 다음과 같다.

1) 음악과 관련한 기표(인물+악기)와 꽃이 전면적으로 浮上함.
2) 1)의 浮上으로(~을 위하여) 배경의 構造器材가 단순해지거나,
    배경의 구조기재를 아예 생략했음.
3) 인물의 형상성은 두드러진 반면, 視點의 왜곡을 더욱 강화시켰음.
4) 소품의 경우, 옛 책의 겉 裝幀 위에 그림을 그렸음.
5) 전통적인 방식의 진짜 프레스코를 처음으로 선보였음.

이러한 조형적 기재들의 변형은 작가의 내부에 자리 잡은 상징체계에 어떠한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인데, 과거의 작품과 연계하여 그 변화를 어느 정도 감지해보자. 우선, 오원배의 그림에서 금관악기를 연주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회색빛 도시의 암울한 시멘트 구조물 속에서 투명 인간같은 인물이 악기를 연주하나, 그들이 낼법한 소리 또한 그림의 분위기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랬던 그들이 바로 이전의 전시 작품에서는 청계천 고가의 상판을 뜯어낸 것을 축하라도 하듯 불어 재끼는 폼이 60년대 고등학교 밴드부 모습이었다. 간결하고 단순한 입체 구조물 옆에서, 아니면 부감법의 빈 공간에서 자신들의 음악에 도취한 까까머리의 밴드부 학생 같은 이 기표들은 마티스의 <춤>과 <음악>을 우리 식으로 표현한 느낌이었다. 무엇을 연주하는지는 몰라도 그들의 음악 그 자체가 상징이라면, 그 음악은 과거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따뜻하며,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기조는 이번의 전시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나, 이전보다 볼륨이 더욱 강조된 인물들이 전면으로 부상했다.

서술적인 측면에서 오원배의 그림공식은 과거보다 훨씬 간결하고 단순해졌다. 과거, 주제 혹은 내용을 위해 사용되었던 복잡한 조형기재들을 화면에서 철거했다고 나 할까? 형상성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바탕을 단순하게 처리함으로써 서술의 공식을 변형시켰다. 좁게는 도시의 암울함을, 넓게는 실존의 부조리를 반영하던 얽히고설킨 미로(迷路)의 구조물들과, 트고, 갈라지고, 덧칠하여 얻어낸 반복과 집중의 질감효과를 배제하고, 대신 조형의 확신성에 기반을 둔 과감한 여백과 단순하면서도 강도 높은 왜곡의 인물로 형상성의 효과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그 경향을 바꾸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프레스코 작품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다. 마치, 브라크(Braque)의 초기 입체주의 풍경처럼, 아니면 고대 로마 보스코레알레(Boscoreale)의 ‘신비의 집(Villa of the Mysteries)’ 벽화에 나오는 건물들처럼 원근법을 부분적으로 적용시키지 않아 도시의 풍경은 초현실적이다. 이 프레스코 작품들은 젖은 듯 스며든 야릇한 색감과 함께 그 기법상의 성격이 오원배 특유의 형이상(形而上, Metaphisical)회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데 아주 적격이다.

한편,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70년대 가면 혹은 탈의 인간은 80년대 짐승으로 바뀌고, 그 인간은 곧 90년대 도시의 암울함을 배회하는 유령이었다. 이번 오원배의 그림에서 우리는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형상으로 만난다. 이러한 변화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데에 30년이 걸렸으니, 작가는 인간의 온전한 모습에 왜 그리 각박했을까? 작가론의 측면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몇몇 유추할만한 단서는 있지만, 기실 이 문제는 필자가 풀어야할 문제이기에 앞서 오원배 스스로의 문제라 함이 타당하다. 다만, 이것이 조형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해야만 하는 작가들의 일반적인 강박관념의 소산은 아니다. 즉, 사실성의 판단으로 인간의 모습이 어느 정도의 형상성으로 변화했는가 하는 문제보다, 그림의 전체 구조에서 그것이 어떠한 상징과 함축성의 의미로 변화하여 스스로의 자율성을 획득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III.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모습이 변화한 오원배의 작품의도를 “심층적인 상징구조”의 일환으로 함께 읽을 때, 다음과 같은 작가론의 단서를 염두에 둘 수도 있다. 그가 불가적(佛家的)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 그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는 것 등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보편성이 떨어지는 유추이기는 하나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불교의 철학적인 접근이 실존주의에 얼마마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생각하면, 나이 오십 넘어 삼십년을 부조리, 허무와 싸웠으니 이제는 화합과 용서의 자비(慈悲)로, 그 다음 것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작품의 변화는 작가의 변화이기도 하다. 작가의 꽃은 이러한 상징 기재가 아닐는지?
마지막으로 오원배가 진정한 표현주의자라면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작가로서 세상과 마주치는 그의 지성적 태도에 있을 것이다. 표현주의자들에게 지성이란 지식의 축적으로 학식이 높아졌다거나 타고난 재능의 출중함 등으로 형성되는 멈춤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내부와 외부의 현실 사이에서 항상 깨어있고자 하는 진행형의 의지로, 현실의 삶을 비판의 자세로 보는 그 자체가 지성이다. 그들의 작품이 역사의식과 사회현실을 항상 품고 있는 것도 이러한 지성적 태도의 결과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원배의 그림공식은 변화했지만, 그가 지닌 지성적 태도는 예전과 다를 바 없다.

  

Recent Paintings of Oh Won-Bae
–Existential Variations on Life Situation–

Young Mok Chung
(Professor, Seoul National University, Art History)

I.
Oh Won-Bae holds the second one-man exhibition after winning the Lee Joong-Seop award. It’s been almost 20 years since I got interested in his works. His works attracted me because of these three reasons. First, he and I are in the same age bracket with the similar growth backgrounds. Second, The tendency for Expressionistic art arouse my sympathy with his style as expressive as Francis Bacon in the place of France, the nation not friendly about German Expressionism. Third, I like the attitude of the artist who persists in his Expressionistic style based on figuration though that kind of trend is sterile in our art world.

II.
At this time, the fundamental structure of his painting is as same as the past works. His basic structure that disposes the figures on the front and sets the background with the cubic-like materials forming the ‘aura’ of the figures still constitutes the picture. Simultaneously the background still seems to play as a subject role, ironically converting the established relational structure of the main figure and the minor background. This whole pattern has been maintained constantly from the past work.
But his “in-depth symbolic structure” is changed. The aspects are like this:

1) Signifier related to music(figure+musical instrument) and flowers rise extensively.
2) The structural matter of the background is simplified or left out for 1).
3) The configuration of the figure is intensified, while the distortion of the perspective is increased.
4) In case of a small piece, the picture was painted on the cover of an old book.
5) First showing of his fresco works which are truly based on the traditional method.

These variations suggest the fact that his internal symbolic system has changed. How does it changed? Let’s find out by linking with the past works. First of all, this is not the first time that we can see the figures playing the music instruments in his painting. We could see the blue figures like ghosts playing the music in the cement construction of the gray city and we could imagine the sound they may make just like the gloomy mood of the painting. But now they look like a high school student band masters of the 1960’s whose playing seem to celebrate something just like rejoicing the removal of Chunggyecheon overpass. Their images, like short-haired teenage students fascinated with their music under the simple cubic structure or in the empty space of the birds eye view, remind us <The Dance> and <The Music> of Matisse. But these signifiers touch our hearts in a different way from them. Though we don’t know what they are playing, if their music itself is a symbol, that music is more positive, warm and active than the past.

In the descriptive aspect, the pictorial principle of his painting became more simple. The past complicated formative matters devised for the content or subject matter eliminated from the picture. He transformed his descriptive principle by simplifying the ground for intensifying the figuration. He removed entangled maze-like structures reflecting the gloominess of the city and the absurdity of the existence in a broad sense and excluded
the cracked and heavy surface of the picture. Then he imported the blank daringly into the screen with the confidence in the form and controlled the figurative intensity by simple geometrical form.  This tendency is more modified in his fresco works. The distortion of linear perspective on architecture like an early cubic landscape of Braque, or the fresco of Villa of Mysteries at Boscoreale creates more feelings of the mystic space like de Chirico.
 
What about the look of human figure? The mask-like man in 1970’s changed to a beast in 1980’s and that man became a ghost wandering in the gloomy city. Now then, we can meet the very realistic human figure for the first time in his painting. Is there any meaning in this change? Why did the artist spend 30 years to draw the realistic human figure and what was his difficulty in it? Although there is some clues I can infer as the answer to this question, it is his problem solved by the artist himself. However I can say that this is not the result from the general obsession of the artists who must change his style in continuance. That is, the importance is not in the fact that how much the human figure changed figuratively and realistically but in the issue that how it became something implicit or a certain symbol to function autonomously in the entire structure of the picture.

III.
When we read his intention to change his human figure as one of “in-depth symbolic structure”, we can infer these biographical clues. He is a Buddhist and he became old. Although these facts are too private, we need to bear them mind to understand his works. When we think how much philosophical approach to Buddhism affect the Existentialism and how he changed his way to confront the world from struggling with the absurdity and nihility to harmonizing and forgiving with compassion, we can see that the change of work means the change of the artist.

In conclusion, if he is a true expressionist, the essence of this change will be his intellectual attitude to face the world as an artist. To the expressionists, the intellect means not the stagnate condition reached by accumulating the knowledge or made by inborn superiority but the progressive will itself waken up always between the innate and the outer world. The reason his paintings always contain the historical mind and social reality is the result of this intellectual attitude. The pictorial principle of his painting has been changed, but his intellectual attitude is same as bef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