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0022] 붓 끝에 실은 소외된 현대인의 자화상(2007)
November 24th, 2007 Posted in Prior Article경기신문/2007.11.14_장준석(미술평론가)
그 작품들은 무엇인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는데 특히 강인한 인상을 주는 인간의 모습들은 작가의 작품과 예술세계가 간단치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어둡고 탁한 색들이 인간의 모습과 배경에서 주저없이 드러나는데, 이는 현대인의 고독을 담은 참단한 삶의 모습 그 자체였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분명하고 선이 굵은 이 작품들은 작가에게서 느껴지는 텁텁함과 하나가 되는 듯하였다…
예로부터 동양의 그림은 서양과는 달리 불교나 도교의 영향을 주로 받아왔었다. 동양의 예술가들은 그림을 통해 우주 자연의 근본에 접근할 수 있다고 여겼으므로 많은 철학적인 노력을 하였고 많은 여행을 하였으며 사유의 폭을 넓혀갔다. 특히 불교에서 내세우는 공(空)의 세계는 그림의 바탕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불(Buddha)은 ‘스스로 깨달은’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수양과 밀접한 동양의 회화와 접목될 수 있었다. 특히 불교나 동야 회화에서의 수기(修己)는 곧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과정으로서, 궁극적으로는 무와 공의 정신으로 귀결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원배의 작품세계에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특히 그의 드로잉 작품들은 마치 무(無)나 공(空)의 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몇 개월 전에 서울 사간동의 갤러리 Lee C에서 본 그의 일련의 작품들은 필자에게 지금도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전시된 드로잉 작품들은 무나 공의 세계에 다다른 듯 매우 원초적이며 소탈하였다. 흔히 작품성에 대한 과욕으로 작품의 본성을 망각한 듯한 작품이 될 수도 있는데 오원배의 그림은 이런 욕심으로부터 초연하여 보는 이를 매우 편하게 해준다. 이는 지금까지 동양의 대가들이 추구해온 무심(無心)의 도(道)처럼 느껴졌다.
필자는 몇 주 전부터 작가를 만나고자 하였으나 서로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수차례 약속을 조정한 끝에 마침내 조금은 텁텁한 작가의 낯익은 목소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작가의 그림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연구실 겸 작업실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신간이 걸리지 않았다. 갈수록 대가로서의 가능성을 더해주는 여성화가 황주리의, 오원배의 작품에 대한 칭찬이 빈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그의 연구실 문을 열었다. 학교에 있는 작업실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공간이 필자를 놀라게 하였다. 대작을 할 수 있을 만큼 천정이 높은 작업 공간은 대학 교수 연구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천혜의 작업 공간 속에서 만나는 서글서글한 작가의 표정은 그만의 매력이라고 생각되었다.
작업실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작품들은 오원배의 예술세계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그 작품들은 무엇인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는데 특히 강인한 인상을 주는 인간의 모습들은 작가의 작품과 예술세계가 간단치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어둡고 탁한 색들이 인간의 모습과 배경에서 주저 없이 드러나는데, 이는 현대인의 고독을 담은 참담한 삶의 모습 그 자체였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분명하고 선이 굵은 이 작품들은 작가에게서 느껴지는 텁텁함과 하나가 되는 듯하였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드로잉을 즐겨 그려왔다는 작가는 대학 시절부터 그려온 스케치북을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어느 곳을 가든지 붓으로 그리고 싶은 대상들을 보면 밥을 먹듯 습관적으로 그려온 게 사십여 년이 되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이들은 드로잉을 학교의 기초 공부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드로잉은 욕심이나 모든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진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오원배는 드로잉을 지금껏 쉬지 않고 그려왔기에 어느 작가들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드로잉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드로잉 작품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닌 것이다.
필자가 Lee C 갤러리에서 본 작가의 드로잉은 남다른 깊은 맛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드로잉은 옛날 동양의 대가들이 우주 본원의 실체를 직관적으로 체험한 것과 같은 무심함으로 그려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하여 수많은 시간과 정성을 다하며 자신을 수기(修己)하는 것처럼 작가는 사십여 년 동안 스케치북 등에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남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는 무심허정(無心虛靜)한 심경으로 자신의 내면에 담긴 것들을 그려냈던 것이다. 오원배의 작품세계에는 이처럼 진지함이 배어있으며, 그의 드로잉 그림은 참으로 진경(眞景)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드로잉 외에도,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유화를 통해 한국적인 시각에서 표현해보려는 유연함을 지니고 있다. 그의 유화 작품에는 무겁고 어두운 색의 톤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순수성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순수성은 “그림을 통해서라도 긍정적인 세상으로 만들고 싶다.”라는 그의 독백조의 말을 통해서도 넉넉히 알 수 있다. 작가는 80년대 초반 무렵에 광주사태 등 민감한 부분들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고 실망을 했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순수한 화가의 마음은 당시의 잔혹하고 차가운 세상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소위 ‘민중그림’과는 다르면서도 왜곡된 사회를 순수한 마음으로 비판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였다. 그가 순수하게 그리는 드로잉처럼 그가 그리는 사회 비판적인 그림도 여전히 진지하고 순수하게 긴 여정을 가고 있는 것이다. 날이 저무는 이 시각에도 오원배는 작업실에서 묵묵히 드로잉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