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0021] 소외를 찬미하라 (2003)
November 3rd, 2007 Posted in Prior Article소외를 찬미하라 (2003, 금호미술관/리뷰)
최태만/국민대교수, 미술평론가
오원배의 작품이 추구하는 ‘소외의 찬미’란 역설은 현대인의 근원적인 비극적인 소외에 대한 집요한 통찰이 낳은 결과이다. 그에게 있어서 소외란 단지 관계의 단절과 고립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 문제와 연결된 것인데 그는 그것을 특정 상황 속에 던져진 인간의 형상을 통해 표현해 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관념의 표상이거나 도해이기를 거부하고 인간의 실체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그의 작품은 형상의 마력을 넘어선 인문학적 상상력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소외란 헤겔(G.W.F. Hegel)이 『정신현상학(精神現象學)』에서 말한 바 있는 자기 소외·자기외화의 현상으로부터 비롯된 철학적 개념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소외를 정치경제학으로 확장시킨 것이 마르크스(K.Marx)의 유명한 ‘노동의 소외’일 것이다.
자본제 경영체제 아래 생산수단의 소유와 노동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게다가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체제의 구축이 확산됨과 아울러 경영조직 또한 대규모화함으로써 노동자의 인간적 가치를 상실한 채 무력감이나 좌절감을 갖게 되는 현상이 바로 노동의 소외인 것이다. 그러나 오원배의 작품에서 소외란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맥락에서의 노동의 소외에 따른 인간가치의 하락과 연관된 것이라기보다 실존적 한계상황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사회현실에 무관심한 채 실존적 고뇌에만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의로운 용기가 충천하던 청춘기인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정치적 통제와 억압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시기에 본적적으로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므로 그의 작품에는 당연히 비민주적 불평등과 사회적 모순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담고 있으나 직접적인 고발의 방식보다 탈과 같은 전통적인 도상을 빌어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 당시 그가 그렸던 인물들의 깡마른 육신과 폐허의 배경을 통해 분노와 좌절, 절망과 고통의 파토스가 사화적 상상력과 결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유학 이후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야만에 대한 고통스런 통찰의 결과 거대한 단백질덩어리들이 서로 뒤엉켜 상쟁하거나 몸부림치는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형상의 강렬함과 어둡고 칙칙한 배경은 그의 작품을 더욱 비극적인 것으로 이끌어가는 요인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작품이 최근에 조용한 자기변화의 국면을 보이고 있다.
최근 오원배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변화로 인물표현에 있어서 구체적이라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과거의 작품에서 인간의 형상은 영혼이 거세된 동물이나 악령처럼 탐욕과 공격성으로 무장한 육질덩어리로 나타나거나 혹은 철저하게 개성이 유린된 익명의 모습인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이 괴물과도 인물들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환경 속에 방치되거나 혹은 시작과 끝이 없는 미궁(迷宮)속에 유폐된 듯 했다. 화면의 배경을 이루는 이 환경은 역사적 유적이거나 우리 일산의 한 부분을 연상시키는 공간임에는 분명하지만 구체적 장소를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을 연상시키는 공간임에는 분명하지만 구체적 장소를 지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화면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종의 패닉 룸(panic room)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거친 붓질과 화면의 두터운 질감은 이 인물들이 불러일으키는 고립과 단절의 분위기를 고조시켰을 뿐만 아니라 화면을 더욱 을씨년스럽고 황량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 익명적 존재들이 비현실적 공간에서 벌이는 공격과 침탈의 행위는 오원배의 작품에서 하나의 특징적인 도상으로 까지 각인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그의 작품을 보며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인 소외임을 깨닫게 된다. 가령 형태를 알 수 없는 단백질덩어리로서의 인간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마치 거대한 가구(架構)나 교각(橋脚)과도 구조물 사이에 놓여진 존재는 같은 현대사회의 공포이지 삶 그 자체를 드러내기 위한 회화적 언술임을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소외는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자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부터 의식과 심리 속에 각인된 존재의 상흔이기도 하다. 곧, 태어남 자체가 잃어 버린 낙원에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라캉(J. Lacan)의 욕망(phallus)처럼 소외는 관계의 복원이나 특정상황에로의 자발적인 편입, 수용, 용인, 굴복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은 아닌 것이다. 존재를 의식하는 한 소외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점에서 그의 소외에 대한 이러한 운명적 집착은 종교적 차원과 결부된다. 비록 그가 결정주의(determinism)에 함몰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소외를 거역하거나 은폐하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종교적 초월임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소외에의 찬미란 모순과 역설은 이런 맥락에서 종교적 초월, 영혼의 구원에 이르는 하나의 자기 포기의 과정으로 이해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이때 자기포기란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할 텐데 소외를 더불어 놀자는 발상은 한편으로 도가적 여유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소외와 더불어 놀고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과 길은 어디에 있는가
최근에 그는 익명성으로부터 다소 물러나 인간의 구체적 형상을 통해 조심스럽게 존재의 존엄성에 대해 일깨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제 어둠 속에서 홀로 나팔을 부는 단독자가 아니라 어떤 단체의 일원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합주자의 모습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배경 또한 밀폐된 공간 즉, 큐브의 감옥이 아니라 열린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여전히 무채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나 화면에는 고귀하고 순결한 금색과 은색이 넓게 차지하고 있으며 거의 금욕적으로 기피해왔던 장식성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그가 프랑스에 체류하던 동안 수집하였던 고서적의 표지들을 활용하여 제작한 그림들은 동서양, 과거와 현재란 경계를 가로지르며 회화제작의 즐거움을 실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화면에는 여전히 존재의 익명성이 유령처럼 부유하고 있으며 인간의 모습은 반쯤은 인간이자 그 나머지는 허깨비인 채로 남아있다.
그런 점에서 그가 여전히 소외에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의심할 수 있을텐데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구체적 인물을 제시하기보다 보편적 존재를 통해 우리 모두 소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고자 한 의도가 작용한 탓으로 이해해 무방할 것이다. 다만 고독한 초상대신 합주(合奏)하는 모습을 통해 조화와 상호존중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자 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을 옥죄는 장벽이나 폐쇄공간 대신 화면이 개방적으로 바뀌고 복잡한 구조물 대신 상징적인 기하학적 입방체를 통해 실존적 상황을 상징하도록 고려한 점은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즉 그의 화면이 이제는 보는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여유로운 장소로 활용될 수 있는 여백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삭막함과 황량함을 대신한 화면의 개방성과 구체적 인물묘사, 화면구성의 견고함은 그의 작업이 소외의 짓눌림을 강요하기 보다 그것을 넘어선 의식의 해방을 지향하고 있음을 간파할 때 그의 작품이 지닌 진정성의 무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수사(修辭)를 빌어 말하건대 소외는 자유이자 해방이다. 그는 그것을 이미지를 빌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
Glorify Alienation !
Choi, Tae-Man/Art critic
The paradox of the glorification of alienation which is undercurrent in Oh Won-Bae’s oeuvre is a necessary outcome of the painter’s insight riveted to the tragic alienation, that is the predicament of human existence in our age. His idea of alienation refers to less a cutoff from human relationship or the solitude in its wake than an existentialist condition, which Artist Oh has materialized in his paintings through the image of human figures thrown into a specific condition. His ouevre thus denies to stand for or depict abstract ideas thereby raising a fundamental question about human reality. In this regard, his works transcends magical power of figure to approximate the imagination of human science.
In fact, alienation is a philosophical concept drawn from self-alienation or self-reification developed in Hegel’s system of philosopy. Marx made an appropriation of this concept to be subsumed in the politico-economical realm; the alienation of labor. In Artist Oh’s oeuvre, alienation is an existentialist one in lieu of the degradation of human values as shown in the alienation of labor in terms of politico-economical system.
Artist Oh however did not turn his back upon the sordid reality while overwhelmed by existentialist anguish. His launching of artistic career coincides with the pinnacle of despotism in the 70s Park’s regime. It is no wonder that his early works addresses frustration and criticism of social injustice and contradictions; however, his messages are metaphorically rendered in traditional icons like masks in lieu of direct expression. Against the backdrop of desolate landscape haunted by haggard souls, one can confirm a creative marriage between his pathos of imagination. However, after his study abroad in France, a massive lump of protein is presented in an intermingled and struggliing way, an outcome of painful insight into human savagery. The intensity of figures fortified by the dark and drab background pushed the tragedy of his works to the fare.
Now Artist Oh is going through a gradual self-transformation. A striking change is visible in his concreteness in portraying human figures. As mentioned above, human figures used to be rendered in the form of animals or devils approximating massive lumps of flesh armed with avarice and aggression. Or humans were portrayed as anonymous completely bereft of individuality. Futher, these monsters were set loose in familiar though strange environment or confined in a labyrinth without exit. The backdrop of this eerie scene must be a historic site or our neighbourhood in truth; however, being devoid of specific qualities, it is tantamount to a panic room that heightens the scenic tension. Moreover, the rough strokes of brush combined with thick texture not only heightens the atmosphere of isolation and cutoff but also adds to the eerie and desolate aspect of the scene. The act of invasion and ravaging by anonymous beings in unrealistic space has been etched in the spectators’ consciousness as the hallmark of his icons. Facing this soul-searing icons we cannot help saying his message is alienation, unavoidable and irrevocable.
Along with human figures depicted as a lump of protein, Artist Oh presents a being caught between colossal iron structures and bridges which adumbrates the panic of contemporary society communicated through the dicourse of painting. To this artist, alienation is human predicament of existence which cannot be disobeyed; it amounts to an existential scar cut into the consciousness of a human being as soon as she is disclosed to his/her Sein in Heideggerian sense. Also, like Lacans’ phallus, say, birth itself is to stimulate yearning for the lost jouissance, alienation cannot be recovered through the normalization of relationships or voluntary involvement in the specific situation. Your keen awareness of existence itself makes yourself already and always a slave to the abesession with alienation.
Oh’s fatal obession with alienation also assumes a religious dimension. Of course, he stands far away from religious determinism; however, his indefatigable will to face alienation as it is indubitably indicates his yearning for religious transcendence. Under this context shoud the paradox of glorification of alienation be understood as a precess of self-renunciation thereby to achieve and obtain religious transcendence and soul-saving grace. Self-renunciation is equal to freedom from obsession, in which respect Artist Oh’s imagination to play with alienation approximates Taoists’ care-free spirit.
How can we find the path on which we can be free by embracing and playing with alienation ? Recently, Oh, moving away from anonymity, attempts to carefully awaken the dignity of existence through the concrete rendering of human figures. Instead of a lonely figure blowing a bugle in the dark, a band of musicians engaged in concert in portrayed; the background is no longer an enclosed space but an open space. Still, gray tone dominates the scene, however, noble and pure golden and silver coloring is pervasive. More strikingly, embellishments which used to be stoically prohibited in the preceding works gradually surface. Particaulrly, those paintings whose materials consist of the cover images of rare old books collected during his sojourn in France appear to demonstrate the artist’s pleasure of painting while transgressing the boundary between the East and West, the past and present.
It is true however the anonymity of existence is still lingering over the canvas; half of the human figures are alive and the other ghostly. In this light, the artist might be imagined to be still obsessed with the theme of alienation. From a new standpoint, howeber, he seems to wish to show that we are not free existence in lieu of concrete figures. We can only surmise that he hopes to address the value of mutual respect and harmony by embedding concert performance instead of isolated solos.
Particularly noticeable is the change made in dealing with space; the walls or enclosed rooms are broken open and the complex structure are replaced by symbols of geometrical cubics, which evoke existential condition. In other words, his canvas gradually becomes a leisurely and cozy place for the spectators. Barreness and desolateness replaced by openness and concreteness in the portrayal of space and humand figures appears to highlight his trajectory of creation which pursues the liberationof consciousness beyond the consciousness burdened by the weight of alienation. Rhetorically speakiing, alienation is freedom and liberation, which is the stuff his paintings are made 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