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0016] 거대도시에 갇힌 인간의 공포 - 신항섭(1998)
October 21st, 2007 Posted in Prior Article대작위주로 현대 도시인의 연약한 삶 표출, 신항섭(미술평론가)
98.11.26, 뉴스메이커
현대미술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제재 가운데 하나는 차갑고 메마르며 획일적인 인공 구조물로서의 대도시와 이에 대비되는 나약한 인간상이다. 겉으로 보기에 도시의 삶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엔 기계적이고 반복적이며 타성적인 생활의 연속이 존재한다. 때문에 도시인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순간 억압된 현실에 대한 자각과 함께 비인간적인 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인공의 도시가 만들어 내는 구조적인 폐쇄성에 전율하면서 소외감에 깊이 사로잡히며 그로부터 탈출하려는 잠재의식이 생긴다. 사회 현실에 민감한 작가들이 도시 문제를 외면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원배 역시 도시와 현대인의 관계를 회화적인 제재로 다루고 있다. 그는 도시란 거대한 존재와 그 앞에서 무기력하게만 보이는 나약한 인간을 대비시킴으로써 위기감을 증폭시킨다. 시멘트와 철골로 상징되는 도시의 인공 구조물은 현대인의 주된 생활공간이면서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고립시키는 역할을 한다. 생활의 편리함이나 능률화를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이면서도 도시인 개개인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하늘을 덮을 듯이 위압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고가도록 교각이라든가, 거역할 수 없는 존재처럼 딱 버티고 선 건물의 견고한 외벽과 접근을 거부하는 사뭇 위협적인 건물의 모서리 등의 이미지는 인간을 질리게 만든다. 어디 그 뿐인가. 이쪽 공간과 저쪽 공간을 사이에 두고 벽돌로 구획된 벽으로 부터 느끼는 단절과 고립감은 도시가 만들어낸 비인간적인 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원배의 시각은 이같은 현대 도시인의 삶을 거의 체념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거역할 수 없는 존재로서 위압적인 인공구조물에 극명히 대비되는 도시인의 이미지는 상반신을 벗은 연약한 존재다. 더구나 그 인물들은 동공이 없는 사실로써 알 수 있듯이 무명의 존재로 설정된다.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개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무명의 인물이야말로 그가 바라보고 있는 도시인의 상징적인 모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운동 등을 통해 육체 단련에 애쓰는 인물을 등장시키지만 그 노력은 어쩐지 무의미 하게만 보인다. 현대인의 어깨에 지워진 복잡한 삶의 무게를 혼자서 감당하려는 듯 작가의 의지가 돋보이는 작업이다.
제9회 이중섭미술상 수상 기념전으로 11월29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도시와 인간의 문제를 다룬 대작 위주로 꾸며졌다. 덧붙여 캔버스에 알루미늄 관을 덮어 금속성의 차가움을 직접 전달하려고 했다든지 종이와 나무를 사용한 부조 형식의 실험적인 작품, 그리고 꽃을 실제의 형태로 만들어 장식하는 등 평면을 벗어나는 소품이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