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의 실존적 변주

[A0010] 동요와 불안의 군상 - 최태만(1995)

October 21st, 2007 Posted in Prior Article

오늘의 한국미술-30인의 작가론(가나아트신서), 최태만(1995)

생존의 그물, 혹은 파괴적 욕망일그러지고 흉칙한 형상을 한 생명체들이 마치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있는 듯한 작품을 통해 인간의 야만성을 폭로하고 있는 오원배의 작품은 확실히 미술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전복시키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다. 칙칙한 무채색의 배경과 일면 난잡하기조차 한 각종 상징과 기호 그리고 동물적 욕망으로 꿈틀거리고 있는 인간들의 무질서는 그의 작품을 더욱 을씨년스럽고 광적인 것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무서운 악몽과도 같은 이 괴기스러움과 악마적 요소로 충만되어 있는 작품 속에서 오원배가 발언하고자 하는 의미의 핵심은 무엇인가? 하지만 그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긍정과 예찬은 분명 아니다.

그것은 관용의 너그러움과 평화와 안정을 희구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 현세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 견해, 종중과 화해 등의 이른바 ‘인간적인 면모’를 송두리째 부정하려는 일종의 반란행위일 수도 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본능적 공격성을 드러내기 위해 인간의 형상위에 가면과도 같은 한꺼풀의 허물을 뒤집어 씌우고 있다. 그것은 위선을 미덕으로 호도하고 있는 온갖 헛된 말과 교리의 우상을 향해 내던지는 그 자신의 울부짖음이 반향된 듯 떨리는 붓질과 단속적이고 격렬한 터치로 가득 차 있는 혼돈 그 자체이다.파괴와 약육강식, 대립과 갈등, 폭력적 파국의 대단원을 예감하게 하는 카오스의 세계-오원배는 이 처절한 투쟁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허망한 욕망의 사슬을 관조하고 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결국 결핍과 상실의 세계이다. 그것은 숭고성과 순수, 쾌감, 이상적인 것, 완전성 등을 아름다움의 규범으로 믿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추악하고 퇴폐적이며 더 나아가 사악하기조차 한 세계관의 반영물로 보여질 수 있다. 흉칙스럽도록 왜곡된 형상은 그러한 생각을 부추키는 요인이다. 세계와 인간의 역사가 일정한 법칙에 의해 발전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 이러한 작품은 더더욱 한바탕 흐드러진 악몽, 비합리적인 공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그러나 오원배가 의도하고 있는 것은 파괴와 대립의 예찬이 아니다. 파멸의 나락에 대해 고발하고자 하는 부정의 정신은 그의 의식과 작품 세계 전반을 관류하고 있는 것이다.
부정의 정신은 위기의식이 없이는 획득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깊숙하게 침투해 있는 위기의 징후들에 대한 정서적, 감성적 반응을 통해 화가들은 곧잘 그것을 표현하곤 한다. 오원배의 작품 또한 이런 맥락에 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존재에 대한 공공연한 비판은 히로니무스 보슈(Hieronimus Boushe)의 저 음습하고 기이한 작품에서, 기독교 미술이나 여타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는 미술 속에 나타나는 악마의 이미지 속에서 풍자와 조롱, 반어(反語)와 익살을 통해 속물근성을 통렬하게 공격하고 있는 도미에(Honore Daumier)와 그로츠(Grosz)의 작품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들 작품의 중요한 특징은 당대의 온갖 세속적 신념과 빗나간 세계관 혹은 부질없는 욕망에의 집착을 꼬집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비록 병적이라 할만큼 기괴한 광기와 경악스러움, 집단최면에 가까운 공포의 축제를 연상시킨다고 할지라도 고야(Francisco Goya)가 그린 일련의 그림은 확실히 신비주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범위를 뛰어넘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겸허하게 돌아보도록 우리를 반성 색의 광간 속으로 인도한다.그것이 단지 추악하며 광기로 가득 차 있고 마성적이라고 제쳐 놓아버릴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작품을 통해 미술 표현의 영역을 한층 확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인간존재 자체를 돌아보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를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신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존엄과 고귀함만을 예찬했다면 우리는 한층 폭넓은 미술의 세계를 소유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위기의식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식의 산물이란 점이다. 그 사회에 전반적으로 팽배해 있는 위기적 상황이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예술가를 자극했으므로 그러한 작품이 제작될 수 있었음을 간과할 때, 작품의 깊은 의미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
한 시대와 역사의 흐름, 사회적 상황 속에 깔려있는 위기의 여러 징후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혁명적 의식의 단초를 파악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부정의 정신이란 그러므로 전면적인 파괴와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 갈구하는 의식을 의미한다. 표면적으로는 난폭하며 무질서한 혼동 속에 방치되어 있을지라도 오원배의 작품 또한 이러한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을 추적하기 위해 그의 작업활동의 과정과 배경을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화가지망생 시기 : 실존에의 탐닉

오원배가 연작 형식으로 제작, 발표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83년 프랑스로 유학을 간 이후부터이다. 파리국립미술학교의 얀켈(Yankel) 스튜디오에서 수업할 당시 프랑스의 저명한 진보적 신문<라 리베라시용(La Liberation)>을 꼴라지한 후 그 위에 인간의 일그러지고 변형된 군상을 그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이런 경향의 작품을 제작하기 이전에 그는 인간의 삶과 죽음이란 실존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특히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 한 후 보낸 대학시절과 졸업과 동시에 맞은 일련의 정치적 사태, 즉 유신말기의 정치적 탄압과 사회적 긴장 및 10.26군부의 재등장 등은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 미술학도인 그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유도했다.그는 이 시기에 인간의 말라 비틀어진 육체를 많이 그렸다.

기아와 공포, 생존의 몸부림이 처절하리 만치 비극적으로 표현된 당시의 드로잉을 보면 젊은 화가지망생들이 청춘기에 언제나 가질 수 있는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사회에 대한 나름대로의 책임의식, 거의 자조에 가까운 자기반성과 자기학대의 흔적을 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종종 과장될 수 있지만 젊은 날의 방황과 열정 속에서 자신의 생의 자세를 다져나가는데 중요한 지침을 제공해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격변의 시기에 한 젊은 미술학도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는 파국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거대한 화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언제 폭발해버릴지 모르는 사회적 위기 속에서 그는 때로 절망하고 때로 좌절하며 고통 속에서 도시 변두리의 초라하고 볼품 없지만 수많은 기층민중이 서로 다닥다닥 어울려 살아가는 꼬방 동네 풍경이나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과 고난, 비애, 환희, 절망, 좌절과 분노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 시기에 그가 그린 그림들 속에서 곧잘 등장하는 특징적 이미지는 가면이다. 그것도 한국의 전통적인 탈의 형상에서 빌어온 것이다.가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은폐의 상징물이다. 탈은 그것을 뒤집어쓰고 있는 인간의 약점을 숨기기도 하지만 그의 위선을 가장하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의 전통적인 탈은 현실의 억압에 대한 항거를 풍자적, 해학적으로 표출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현실이 비록 고달프고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지배계층인 사대부를 곯려줌으로써 당대의 사회적 모순을 폭로. 비판하고자 했던 기층민중의 지혜와 저항의식의 결집물이었던 것이다. 오원배가 가면(탈)을 주로 그린 것은 단지 복고적인 향수를 자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의 가면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그 속에 가려진 인간의 저 뼈저린 고통을 더욱 확연하게 부각시키는 장치로 도입되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의 궁핍한 정신과 육체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으리라고 그는 믿었던 것이다. 격동하는 시대와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인간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그에게 실존철학의 여러 개념과 논리는 많은 시사점을 제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젊은 날의 방황과 갈등을 겪는 청년에게 실존철학은 언제나 매력적일 수 있다. 오원배 역시 예외 없이 이것에 몰입하게 되었고 이것을 통해 인간 실존의 궁극적 이유를 해명하고자 했다. 애초의 사회적, 정치적 시대상황에 대한 관심이 인간의 실존에 대한 관심으로 전이되면서 그의 작품은 과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럴 즈음, 외국에로의 유학은 그에게 새로운 작업에 대한 필연성을 자각하게 만들었지만 그가 늘 관심을 기울여 왔던 인간의 실존의 문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1986년, 귀국과 더불어 동덕미술관에서 가진 첫 개인전은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첫 개인전을 위한 카달로그 서문에 붙인 미술평론가 임영방의 글은 오원배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해석한 바 있다.”서로 엉키고 꿈틀거리는 괴물들이 황폐한 이 세계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더욱 극화시키고 있다. 잡다하게 눌려져 있는 물건들은 모두가 사람들이 만든 가치세계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 가치세계의 허상이 여기서 제시된 셈이며, 여기에 타락된 인간과 괴수같은 인간을 보게 된다. 숫자와 시계는 불변의 차원이며, 이에 운명과 허위성을 나타내는 주사위와 가면을 인간세계에 있게 한다.

결국 시간과 공간이라는 절대차원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세계의 허상이 비유되어 그림으로 제시된 것이다.임영방의 이 글은 오원배가 그동안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제작해 왔던 작업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실존에 대한 명상적, 사색적 차원으로부터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아비규환에 대해 발언하는 것으로 넘어오면서 그의 작업은 소극적이고 체념적인 것으로부터 적극적이고 개입적인 것으로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년기의 작은 규모의 화폭 속에 인간의 왜소하고 나약한 육체가 처절하리만치 깡마르고 볼품없으며 사뭇 비애감을 자아내게 만드는 것으로 표현되었던 반면에 그의 첫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은 대개가 장대한 규모와 거침없이 휘두른 듯한 거친 터치, 과감하게 찍어 바른 안료와 제어할 수 없도록 분방한 구도 등을 통해 과거의 병적 센티멘탈리즘을 완전히 떨쳐내어 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그의 작품은 사각의 틀을 거부하고 화폭 그 자체를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으로 일관하게 된다. 프레임으로부터의 해방은 화면의 구조에 대한 계산을 용납하지 않고 거의 직관적으로 화포 속으로 뛰어들게 만든다. 그리하여 그는 장방형의 화포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이리저리 절단해 내기도 하고 덧붙이기도 하면서 한정된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형상의 최면적인 힘과 수사학필자가 오원배의 작품을 더욱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형상과 표현의 언어>란 전시를 기획, 조직하면서 그와 사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시를 조직하면서 필자는 그의 특이한 작품세계에 주목했고, 기획의 변을 통해 그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썼었다.”그의 작품에 표현된 세계는 분명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가공된 상상의 세계이면서도 기묘하게도 인간이란 존재의 그 탐욕과 수성, 허망한 욕망의 그늘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고발하고 있다.형태의 완전한 왜곡에 의해 획득된 형상의 최면적인 힘과 저 암흑 속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는 사물들이 만들어 놓은 초현실주의적 공간으로 하여 그의 작품은 가공적인 이야기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그는 작품의 회화성을 강화하기 위해 꼴라지를 도입하기도 하며 각종 문자나 숫자 등을 화면에 풀어 헤쳐 놓고 있다.”그의 작품에서 추출할 수 있는 회화적 힘은 거의 주술적이리만치 혼을 뺏아가는 이 형상의 최면적인 힘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관심이 작품에 담고자 하는 내용의 심각성보다 이른바 조형적인 것에 대한 것으로 기울어지면서 그 상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형상의 왜곡과 파괴가 훨씬 강화되면서 그의 작품은 더욱 기괴한 초현실적 세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작품에 나타나는 인물의 형상이 결코 가공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마침 이 글을 준비하기 위해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이러한 점을 강조하려고 했다. 즉, 그의 말을 따르자면 심하게 데포르메된 형상 자체가 자신의 눈에 비친 인간의 실제적인 모습이란 것이다. 그는 이 초현실주의적 공간조차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정상적이지 못한 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것에 대해 환기시킴과 아울러 인간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 잃어버린 것이란 넓은 의미에서 ‘인간성’이다. 그것도 도덕이나 윤리, 종교의 차원에서 말하고 있는 인간성을 의미한다. 상호투쟁과 상호부정이 만연한 세상에서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인간세계의 모순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고 그는 믿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그가 그리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어쩌면 그것은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일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그것이 인간일반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며 실천하고 있는 주체로서의 인간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처참한 골육상잔의 파토스는 인간사회의 현실에 대한 구체성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사변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관념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란 존재에 해한 보다 차원 높은 파악과 간파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소는 아닐까? 또한 그의 작품 속에 항상 표현되고 있는 갈등과 대립 역시 인간의 역사와 사회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작업실의 저 폐쇄적 공간 속에서 배양된 심리적 상흔에 가깝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 인간의 삶의 모습들이 이토록 부정적으로만 묘사되어야 하는가? 왜곡과 파괴의 충격 이후에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는가? 이 질문에 대해 오원배는 앞으로 희망에 찬 밝고 건강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표현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인간을 그리면서도 파편화된 모습에만 주목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삶과 정신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미술사 속의 숱한 과거의 작품들에 대한 고찰과 반성, 나아가 이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로서의 인간의 실제적인 모습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을 때 그 작품은 항상 관념론의 미궁 속으로 함몰해버릴 수 있다는 점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