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의 실존적 변주

[A0008] 日常서 비범추구 “남다른 작업” - 김태익(1993)

October 21st, 2007 Posted in Prior Article

올해의 젊은 작가展
1993년 5월 21일 조선일보, 김태익기자

3단계 작품세계… 현대인「푸른 人間」묘사
朝鮮日報 제정 「올해의 젊은 작가」展에 두 번째로 초대된 서양화가 오원배씨(동국대 교수)의 전시 카달로그에는 「1978-1993」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자신이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15년여동안 화가로서 그린 작품세계와 그것들의 변화과정을 모두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나이가 이제 40 고개에 들어선 젊은 화가에게는 좀 뜻밖의 일이다. 작가의 지나온 궤적을 종합해서 보여주는 「회고전」이란. 대체로 60-70 줄의 원로작가에게나 어울릴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초대전을 제 畵業의 중간점검의 場으로 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제 창작활동의 중요한 원동력은 변화에 대한 욕구였습니다. 제 안에 내재해 있는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요소의 상호 충돌, 시행착오와 극복의 과정이 없었으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씨는 「관람객들이 지금의 제 작품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변화의 과정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라고 「1978-1993」의 의미를 설명했다. 동국대 예술대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큰 전시회를 며칠 앞뒀으면서도 무척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보는 이의 눈을 한눈에 사로잡기 보다는 천천히 빠져들게 하는 그의 그림과도 같다. 그러나 그 「변화」궤적과 의미를 얘기하는 목소리에는 힘과 논리가 넘쳤다. 그는 『같은 재료를 갖고 같은 소재를 비슷한 기법으로 몇십점이고 그리는 작가가 있다. 어떤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작품세계의 심화라고 평하는 데 이는 참다운 의미에서의 심화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또『모호한 재료적 절충으로 변화를 꾀하는 것도 생명력이 짧다』고 주장한다.

이번 전시의 큰 특징은 대작들이 중심을 이룬다는 점이다. 18점의 출품작중 5백호 이상 8백호까지의 대작이 10점이다. 비교적 작은 작품이라야 50호~1백호의 것인데 이것들은 초기작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작품이 대형화해간다는 것-. 이는 그의 창작 열정이나 조형감각이 최근들어 전성기에 도달해 있음을 보여준다. 1953년 仁川 태생인 吳씨는 동국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수료했다. 「파리 국립 미술학교 회화 1등상」,「프랑스 예술원 회화 3등상」등의 경력으로 미루어 프랑스에서의 활약상을 짐작할 수 있을 뿐,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수상경력도 없고 미술운동의 주역이 된 적도 없다. 그러나 평론가 吳秉郁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84년 루브르박물관 공사 당시 나무판자벽에 수많은 낙서화를 그리고 한국말고 「불란서 졸개들을 데리고 와서 그리다」라고 쓴 장본인이었다. 그때 그는 에콜 드 보자르에 있는 얀켈 화실의 과대표였다.

吳씨의 작품세계는 세 단계로 구분이 가능하다. 첫째는 80년을 전후해 당시의 암울한 사회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기였다. 이때 그의 작품들에는 가면이나 민속탈을 쓴 비참한 몰골의 인간상, 머리가 떨어진 불상 등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오씨는 이 시기의 작품이 다분히 「감상적」「소재주의적」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둘째는 82년부터 85년까지의 프랑스 유학 시기로, 회화에 대한 그의 표현 욕구가 갖가지 형태로 분출된 때였다. 이 시기 그는 ▲왜 그림은 4각의 캔버스에만 그려야 하는가, ▲왜 튜브의 물감만 재료로 쓸 수 있는가 등 기존의 표현방법에 회의를 품었고 이에 대한 반발을 실천에 옮겼다. 사회적 철학적 주제의식은 약화됐을지 모르지만 최근작에서 보이는 거칠고 당당하고 풍부한 회화성은 이때 습득된 것이었다. 그의 최근작들에는 내용을 잘 알 수 없는 미로, 구조물들을 배경으로 푸른빛을 띤 인간 군상들이 자주 나타난다. 이런 화면 배치는 평론가들에 의해 대체로 현대 산업사회 속에서 인간의 실존상황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간과 구조간의 긴장관계를 과감하고 끈기있게 자신의 독자적인 스타일로 창출』했다는 평(이구열)이나『견고한 구조물인 인습 비리 부정들에 도전하며 가망 없는 싸움을 하는 힘없는 푸른 인간들은 그 구조물들을 결코 타개하지 못하고 푸른 악기로 의 슬픈 연주밖에 할 수 없는 우리들의 초상으로 보여진다』는 해설(오병욱)은 그런 예이다.

『오늘의 진정한 정신적 상황과 삶은 협의로 해석하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보편성을 갖는 현실 속에서 발견된다. 희망 찬 생의 환희와 기쁨, 고통과 번민 좌절, 아무 의미없이 이루어지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그것이다.』그러나 이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게 표현해야겠다는 데서 그의 싸움은 시작된다. 화가에게 40대는 가파른 언덕과 같다. 20~30대와 같은 공모전 입상의 흥분도 없고 60~70대와 같은 원숙함도 없다. 이런 그의 작가로서의 꿈은 무엇일까. 그는 『오아무개 하면 「뭔가 남과 다른 작업을 하는 친구」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